진주 의곡사 한글비석 (문화재자료 제596호)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
시대
근대
분류
기록유산
수량(면적)
1기(16㎡)
지정일
2015-10-15
관리자
진주 의곡사

진주 의곡사 비석은 사암으로 되어 있으며, 가로 30cm, 세로 80cm, 두께 14cm의 크기며, 의곡사 일주문과 대흥루 사이의 주차장 동편 산자락에 별로 주목받지 못한 상태로 세워져 있다. 윗부분은 박락되어 ‘南無阿彌陀佛’의 ‘南’과 ‘父母生天目連經’의 ‘父’ 두 글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전면만 대강 다듬어 글씨를 새겼고, 후면과 좌우면에는 쪼아두기만 하였을 뿐 아무런 글씨를 새기지 않았다. 전면에는 중앙에 “(南)無阿彌陀佛 塔”이라 새겨져 있고, 좌측에 이보다 좀 작은 글씨로 “父母生天目連經”이라 한자로 새겨져 있으며, 우측에 대칭이 되도록 이 한자의 음을 한글로 “부묘생쳔목연경”이라 새겨 두었다. 그리고 한글과 중앙 글씨의 사이 하단에 ‘丙辰三月’이라 새겨진, 설립연월로 보이는 기록이 있다.

이 비석을 세운 주체를 알 수 있는 어떤 기록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설립연월로 추정되는 ‘丙辰三月’이라는 글자를 바탕으로 유추할 도리밖에 없다. 중앙 하단에 새겨진 ‘塔’이란 글자로 보아 이 비석은 ‘(南)無阿彌陀佛’과 ‘父母生天目連經’을 끊임없이 염송함을 상징하는 탑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두 구절은 7월 백중날 끊임없이 염송하면 돌아가신 부모가 지옥에서 구제되어 천상에 태어난다는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비석을 설립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신분이 미천하였을 것으로도 짐작된다. ‘父母生天目連經’을 한자로 새겨두고도 다시 이를 한글로 비석에 새겨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의곡사 대웅전 동북편 계곡 가에 세워진 같은 석질과 같은 크기의 비석이 불기 2963년 병자(1936)년 계춘에 세워졌고, 그 비석의 윗부분이 이 비석보다 약간 덜 박락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이 비석의 ‘병진삼월’은 1916년의 3월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왜냐하면, 진양지와 의곡사지에서, ‘신라 때 초창된 후 임진왜란 때 이 절이 불에 타자, 1618년(광해군 10) 목사(牧使) 남이흥(南以興)이 주지 성간(性侃)을 도와 재건하였으며, 그 뒤 1879년(고종 16) 덕운(德雲)이 중수하였고, 1898년(광무 2) 석종(石宗)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을 참고한다면, 1879년 이전의 병진년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